[정동칼럼]AI도, 암처럼 단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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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가 ‘AI 분야 세계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국비 30조원, 지방비 5조원, 민간 투자 유도 65조원 등 총 100조원 규모의 투자를 제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소버린, 즉 ‘독자적’ AI의 확보는 이제 국가 경제를 넘어 문화적 종속에 대한 방어 전략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처럼 AI는 거스를 수 없는, 확고한 ‘단일’ 명제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마치 AI를 중심에 두고 각국과 기업들이 전쟁에 돌입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현실은 익숙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과거에도 ‘암’과의 전쟁에 돌입한 바 있다. 근대 문명화의 불가피한 부산물로 여겨진 암을 제거하기 위해 인류가 전쟁을 선포했고, 여전히 종전은 선언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영국 의료인류학자 엘즈페스 데이비스(Elspeth Davies)는 암이 ‘단일하고 동질적인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다’라며 ‘암의 복수성’을 강조한다. 그는 암을 사회적·윤리적·정서적 차원에서 구성되는 ‘다수의 암들’로 이해한다.
예컨대, 덴마크에서 암은 ‘뒤엉킨 암(entangled cancer)’이다. 국가 주도의 표준화된 진료 체계는 조기 진단을 강조했지만, 그 설계는 중산층의 자원과 건강 리터러시에 기반해 있었다. 이로 인해 저소득층은 오히려 제도에서 배제되었고, ‘불필요한 병원 방문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메시지는 의료 이용을 위축시켰다. 그 결과, 암 정책은 의도와 달리 현실에서 ‘뒤엉킨’ 효과를 초래했다. 한편 인도 델리에서 암은 ‘견뎌내는 암(enduring cancer)’이다. 이곳에서 암은 여성 간병자, 특히 과거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아내에게 감정적·윤리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즉, 남편의 암 간병은 탈출이 어려운 도덕적 사건이자 감정적 족쇄로 기능한다. 결국 암은 이들에게 ‘견뎌내야 하는’ 삶의 조건이 된다.
암을 떠올릴 때, 우리는 종종 명확하고 단일한 이미지를 상상한다. 그러나 데이비스가 강조하듯, 암의 의미는 국가, 기술, 의료 윤리, 계급, 젠더, 종교 등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 즉, 암은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복수적인 사회적·윤리적 구성물이다.
그렇다면 AI는 어떠한가. 암이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층적으로 구성되듯, AI 역시 단일한 기술 대상이 아니라 국가, 산업, 노동, 윤리의 교차점에서 복합적으로 의미화된다. ‘소버린 AI’를 둘러싼 국가 중심의 강력한 정책 담론 속에서, ‘AI 3대 강국’이라는 명제는 이제 하나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구호 앞에서, AI의 복수성을 말하려는 목소리는 때로 백년지대계를 설계하는 국가 전략 앞에 사소한 민원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암도, AI도 단일한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부작용은 이미 다양한 현장에서 감지되고 있다. 팬데믹부터 치매, 자살 문제까지 생성형 AI는 사회적 의제를 해결할 전환점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으며, 그에 대한 기대는 실효성과 무관하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모습은 다르다. AI가 일부 업무를 보조하며 노동 여건을 개선한 측면도 있지만, 반복 업무는 AI가 맡고 인간은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의사결정에 집중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2024년 MIT 콘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쉬운 사례는 챗봇이, 어려운 사례는 인간이 맡게 되면 심각한 번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같은 해 미국·영국 등 4개국 노동자 2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77%는 ‘AI 도입 이후 업무량이 증가했다’, 71%는 ‘번아웃을 겪고 있다’, 33%는 ‘6개월 내 이직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제 AI는 다양한 영역에서 만능 해결사처럼 받아들여지며, 국가의 핵심 어젠다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일한 상상력의 이면에는, 그 기술과 더불어 생존해야 하는 이들의 ‘뒤엉킨’ 현실이 존재한다.
정녕 AI와의 공존이 불가피하고, 그 상황을 각자 ‘견뎌내야’ 한다면 우리는 암과의 전쟁에서 잊힌 이들, 패잔병이 된 사람들을 떠올려야 한다. 국가만이 아니라, 모든 개인 또한 자신의 전장 속에서 저마다의 혈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일정이 9일로 잡히면서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와 윤 전 대통령이 본격 법리 대결에 들어갔다. 특검은 구속영장 청구서에 5개 범죄사실을 적시하는 등 윤 전 대통령 혐의가 가볍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윤 전 대통령은 특검의 영장 청구가 사실과 법리 측면에서 모두 부당하다고 맞선다.
서울중앙지법은 9일 오후 2시15분 서관 321호 법정에서 남세진 영장전담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3기) 심리로 윤 전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를 한다고 7일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할 계획이다. 당사자가 출석하면 상대적으로 구속을 면할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했다.
사후 계엄 선포문 작성과 외신에 적법성 홍보 지시“경호처, 총 보여줘라” 등 5개 범죄사실 적시 법리 공방증인 회유 가능성 판단도 윤석열 직접 출석할 계획
심문에서는 특검이 지난 6일 법원에 낸 사전구속영장청구서에 적힌 범죄사실을 두고 양측이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영장청구서에 5가지 범죄사실을 적시했다. 먼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을 선택적으로 부른 것을 두고 특검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친 듯한 외관을 갖추기로 마음먹었다”고 적었다. 이런 식으로 불참한 국무위원의 심의권을 방해(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했다는 논리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참석할 수 있는 국무위원에게 차례로 연락을 돌렸고, 의결 정족수가 맞춰지자 국무회의를 진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특검은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사후에 계엄 선포문을 작성했다가 폐기한 것은 허위공문서작성,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공용서류손상에 해당한다고 본다. 강 전 실장이 계엄 선포가 적법하게 진행됐다고 꾸밀 의도로 계엄 선포문을 뒤늦게 작성했고 윤 전 대통령이 이를 결재했는데, 다시 윤 전 대통령의 최종 지시에 따라 선포문을 파기했다는 것이 특검 주장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행정 절차의 보완을 위해 강 전 실장이 계엄 선포문 표지만 작성했다고 맞선다. 단순 과실이라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해당 문서를 파기한 것도 윤 전 대통령은 몰랐다고 주장한다.
특검은 또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시 대통령실 외신대변인(해외홍보비서관)에게 “비상계엄이 적법하다고 홍보하라”고 지시(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했다며 이는 허위 공보에 해당한다고 영장청구서에 명시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계엄의 위법성은 (이후) 탄핵심판에서 인정된 것이기 때문에 계엄 당시 공보를 문제 삼는 건 위법성을 소급 적용하는 것”이라며 맞선다.
특검은 체포영장 집행 저지(직권남용·특수공무집행방해), 군사령관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대통령경호법상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이 경호처 간부에게 위법한 지시를 내렸다고 보고 있다. 영장청구서에는 윤 전 대통령이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 시도에 대비하면서 김성훈 전 경호처 차장에게 “총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라”고 지시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담겼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이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에 대해서도 “보안 규정에 따라 조치하라고 했다”는 설명이다.
혐의뿐만 아니라 윤 전 대통령의 구속 필요성을 놓고도 양측은 공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검은 영장청구서에 “(윤 전 대통령이) 지위와 권한을 활용해 증인들이 윤 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증언하도록 회유할 가능성이 크다”고 적었다. 또 윤 전 대통령 측이 특검의 구속영장청구서를 일부 언론에 공개한 것 역시 구속 필요 사유로 제시할 계획이다. 반면 윤 전 대통령 측은 내란 형사재판에서도 증인들이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것을 보면 사건 관련자를 회유할 우려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윤 전 대통령은 9일 오후 심문이 끝나면 서울구치소나 서울중앙지검 유치장에서 결과를 기다리게 된다. 영장 발부 여부는 9일 늦은 밤이나 10일 새벽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김용원 상임위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불법계엄에 대해 “대통령의 지나친 권력 남용에 속한다”고 밝혔다. 앞서 김 위원은 지난 1월에는 “계엄 선포는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제16차 상임위원회에서 ‘계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위원은 “여전히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통치권 행사라고 생각하시냐”는 기자의 질문을 언급하며 “한 번도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고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지나친 권력 남용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은 “다만 탄핵심판이나 내란죄 재판과 관련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준수해야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지난 1월13일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에 대해 방어권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안건을 상정해 내란을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김 위원과 한석훈·김종민·이한별·강정혜 위원 등은 같은 달 9일 안창호 인권위원장에게 ‘윤 전 대통령 방어권 보장’, ‘불구속 수사’ 등을 권고하는 내용을 담은 ‘(긴급)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제출했다. 안 위원장은 이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상정했다.
이 문서에서 김 위원 등은 “계엄 선포는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고유 권한이며,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결심한 이상 국방부 장관 등이 그러한 대통령의 결심을 뒷받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이라는 밝혔다. 그러면서 “더구나 계엄이 선포되고 지속된 짧은 시간 동안 사람이 큰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사례가 없고 기물 파손 정도도 경미해 체포되거나 구금된 사람도 없다”며 “내란죄를 적용해 체포·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일은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인권위는 이날 비상계엄 선포 요건의 구체화와 계엄 시 기본권 침해 방지를 골자로 한 ‘계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의견 표명 안건을 재상정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국회 국방위원회는 지난 4월 여야 합의를 거쳐 계엄법 일부 조항을 개정했고, 일부 개정법률안은 이날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됐다.
인권위는 이번 달 중순까지 계엄법 개정안에 대한 최종 의견을 정리해 오는 8월 초까지 국회의장에게 공식 전달할 계획이다.
7일(현지시간) 스페인 북부 팜플로나에서 열린 산 페르민 축제의 첫 번째 행사인 ‘엔시에로’에서 참가자들이 황소와 함께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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